코스모스에서 일반적인 곳이라 할만한 곳은
저 광대하고 냉랭하고 어디가나 텅 비어있는
끝없는 밤으로 채워진 은하 사이의 공간이다.
.......
코스모스의 어느 한 구석을 무작위로 찍는다고 했을 때,
그곳이 운 좋게 행성 바로 위나 근처인 확률은 10분의 1의 33승이다.
.......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살고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中
- 2012/08/26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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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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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나의 점수 : ★★★
추리소설로 읽기에는 아까운 이야기
* 아는 사람은 느껴라! 풍부한 비유와 은유
비유와 은유 소위 문학시간에 말하는 "알레고리"를 통해 문장은 그 문장 자체의 의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
독자와 저자간 그런 reference의 일치가 발생하는 순간의 희열이란, 정말 무릎을 탁 치게되는 유레카의 순간인 것이다.
나는 언제가 되어야 글을 쓰는데 이런 알레고리가 묻어나오게 될까..?
"베드로의 배반을 유다의 배반에 비겨서는 아니되지요. 베드로는 용서를 받았지만 유다는 용서를 못 받지 않았던가요?"
"평범한 대중들 사이에 끼어있는 이런 무리는 흡사 길 위로 진창이 흘러내려온 형국이었다."
"자, 강을 생각해 보아라, 단단한 땅, 튼튼한 제방 사이를오래오래 흘러가는강을.. 어느 시점에 이르면 흘러가는강은 기진한다. 너무 오랜 시간 너무 넓은 공간을 흘렀기 때문이요, 마침내 바다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로써 강은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맞기 때문에 강은 더 이상 제 존재를느끼지못한다. 즉, 강의 고유서은 여기에서 끝나는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강은 강 자체의 삼각주가 된다. 주류는 남을지 모르나 지류는 사방으로 흩어진다. 혹 어떤 흐름은 흐르기를 계속하고, 혹 어떤 흐름은 다른 흐름에 휩쓸리나 어느흐름이 어느 흐름을 낳고 어느흐름에 휩쓸리는가는아무도 모른다. 어느것이 여전히 강이고 어느 것이 이미 바다가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수세기 동안 우리 모듬살이의 몸이기도 했던 교회의 몸, 즉 하느님의 백성이 너무 비대하고, 그 관심의 영역이 넓어져, 지나온 길에 모든 나라의 찌꺼기를 운반하느라고 그 순수성을 상실했다는 말을 하고자 한 것이다."
"황금의 기억과 산의 기억이 하나가 되면 황금산이 되어 버리는 것... 이것이 상상력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 들보가 박혀있는 것을 모르고 형제의 눈에 든 티를 찾으려 하여서도 안 되는 일..."
"성 목요일의 유다보다 더 복잡한 심정으로,...."
"두 개의 건초더미 사이에서, 어느 쪽을 먼저 먹을까망설이다가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는 나귀 이야기를 알지?"
"베르나르 기는 교묘하게 살인죄와 이단죄를 한줄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는 이것을 절묘하게 수도원의 목에다 걸어 버린 셈이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고기를 잡으면 버리게 되는 그물, 높은 데 이르면 버리게 되는 사다리 같은 것.."
* 교리 난상토론 - 중세의 이단재판
중세 교회의 곪아터져가는 환부가 이 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프란체스코파, 베네딕트파 등의 수도회 종파들은
교리 토론은 왕권과 교황권간의 다툼으로 귀결되고 만다.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 이단이 아니라, 내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이단이 된다.
이단으로 몰려 화형주에서 타죽었다가, 이듬해에는 복권이 되기도 하고, 오늘의 선지자가 내일의 이단이 되기도 한다.
교회와 신앙 본래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성경에다 인간의 해석을 덕지덕지 같다붙여 흉측한 괴물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하면 성서의 해석을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하게 하는 데 쓸 수 있을까에 눈이 팔려, 남을 이단으로 모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물론 그 와중에도 믿음을 지키며 우직하게 신앙을 실천하는 수도승도 있었음을 알고있다)
우연찮게 책을 읽던 도중 여기 대성당에 견학을 갈 일이 생겼다.
가장 실소를 금치 못했던 것은 문을 들어오자마자 문 우편에 커다랗게 그려져 있던 산 크리스토발 그림이었다. 가이드가 설명하기를 산 크리스토발 앞에서 성호를 그으면 고해성사의 의무가 면제되기 때문이라나...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문만 얼른 들어와서 성호만 긋고 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니.. 이 얼마나 인간의 편리에 같다붙인 억지스러운 조합인가.
카톨릭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만, - 종교란 거의 예외없이 상황에 맞게 변용되는 법이니 - 성물을 신 받들듯이 하는 것이나, 스페인에서 특히 강렬한 성모 마리아 신앙 등 기독교도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화려한 대성당을 돌아보면서 머리가 복잡해져 버렸다.
결국엔 '하나님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만을 보셔서 자신의 백성을 알아보시겠지' 라고 공을 신에게 넘겨버렸다.
* 더..
이런 저런 포인트 말고도 움베르토 에코가 기호학자이니만큼 기호학의 측면에서 읽어도, '청빈'에 대한 논쟁이나, 소형제파 수도회에 대한 이단심판, 논리와 자연과학에 눈을 떠가는 자들과 이를 애써 부정하려는 자들, 등등등
여러가지 읽는 방법 중 자기가 제일 잘 읽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지식이 일천하여 내가 볼 수 있는 것 만을 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보았을테지..
- 2012/01/24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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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파를 다루는 방식, 그리고 카이사르의 죽음
둘다 독재자라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술라와 카이사르는 반대파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딴판이었다.
술라가 살생부를 만들어서 반대파를 가차없이 처형했던 반면, 카이사르는 반대파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듯이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우월감에 의해 나온 것이든, 자원 활용에 있어서의 필요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든간에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이 용서한 반대파에 의해 살해되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용서한 사람들이 다시 자신에게 칼을 겨눠도 어쩔 수 없다고 서한에 쓴 카이사르는, 자신의 생각에 충실하게 살다가 살해당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카이사르가, 반대파였던 원로원 의원들이 정말 충성서약을 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해하지 않을것이라 믿었던 걸까? 카이사르 치고는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산전수전 다 겪은 카이사르의 최후 치고는 결말이 좀 허무하다고 해야되나.
역사에 가정은 허용되지 않지만, 카이사르가 내전을 진압한 뒤 반대파를 충실히 척결했다면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에는 카이사르가 후계자로 지목한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십수년간의 내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 제2의 건국
일단 공화정이 나으냐, 제정이 나으냐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한니발이 지적했다는 "육체가 먼저 성장해 버린 탓에 내장의 발달이 그것을 미처 따라가지 못한 것"을 개혁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흥망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에는 동감한다.
영토의 팽창, 경제력의 향상 등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개혁"이 필요했고, 카이사르는 그것을 꿰뚫어 본 것이다. (뭐 개인이 황제가 되고싶어서 그랬다고 하면 반박할 말은 없다만..)
로마하고는 비교가 되진 않겠지만, 우리나라도 뭔가 앞만보고 달려온 고도성장 시대를 뒤로하고 이제는 안정성장의 시대로 나아가야하는 시점에 왔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에게도 "개혁"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건 "어떤" 개혁일 것이며, "누가" 나서서 개혁할 것인지는 아직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게 보이면 내가 위인인 것이겠지..;;;;;)
어쨌든 쇠퇴하지 않으려면 환골탈태해야 할 지점에 와 있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 카이사르의 문장
저자는 앞 권과 이번 권에 걸쳐 카이사르의 명료한 문장력을 칭찬하고 있는데, 나는 사실은 라틴어로 직접 본 것이 아니라서 문장이 수려한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유명한 veni, vici, vidi 정도라면 알고있고, 칭찬받아 마지않을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몰랐던 것들 중에서,
10군단 병사들의 반란을 "전우 여러분(콤밀리테스)"가 아닌 "시민 여러분(퀴리테스)"라는 단어를 선택하여 제풀에 잠재운 일화나,
내전기에서 폼페이우스의 죽음을 "알렉산드리아에서 폼페이우스의 죽음을 알았다"는 한 줄로 담담히 처리한 부분, (저자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말을 빌려 이 한줄이야말로 문장이라기보다는 대리석에 새겨진 고대 미술품 같은 것이라며 감탄하고 있다)
머릿말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시작하는 "갈리아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라는 첫 문장의 강렬함.
키케로도 칭송하지 마지않았다는 갈리아 전쟁기는 정말 원어로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물론 생각으로만 그치겠지만)
* 그리고 그 후..
옥타비아누스의 사례는 "특정한 재능이 부족하다해도 그것 자체로는 불리하지 않으며 부족한 재능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과 협력체제만 확립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렸을 적 로마인 이야기를 읽을때도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이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립파의 관계였다. 내가 옥타비아누스가 되든 아그립파가 되든 이런 동지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벌써 옥타비아누스, 아그립파(군사), 마이케나스(외교)의 활약이 기대된다.
어렸을 때 읽을 때랑 지금 읽을 때의 느낌이 너무나 달라서 신기할 정도이다.
그래서 이렇게 유행지난 독후감이나 쓰고 앉았다... (이런..)
로마인 이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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